[문환성 칼럼] “街人과 김종인에게 꿈을 배웠다”

고3 청소년이 전하는 김종인과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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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현재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 참으로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개인 신상에 관한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할 때에 제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들어주셨으면 했습니다.

제가 하려는 첫번째 이야기는 ‘꿈을 꿀 수 있었던 계기’입니다. 저를 비롯해 전 세계의 많은 청소년들은 ‘꿈’을 가슴 속에 하나쯤 품을 수도 있고 방황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초등 2학년때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꿈’과 ‘진로희망’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늘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너 꿈이 무엇이니?”라고 물어보셨을때 우리 학생들은 항상 “의사요”, “교사요”, “축구선수요”라 대답을 하곤 했는데 어느 누구도 “그건 꿈이 아니라 진로희망이란다”라고 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학교 밖에서도 그것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몰랐습니다. ‘꿈’이 무엇인지.

저는 ‘꿈과 진로희망의 차이’를 제가 중학교 입학할 때까지 지켜왔던 진로희망인 ‘역사학자’에 대한 스스로의 관심이 사라지며 느꼈습니다. 대부분의 이가 그렇듯 본인의 삶에 대한 방향성을 대변하는 진로희망이 사라지자 저 역시 많이 방황했습니다. 학교생활에 집중도 하지 못했고 등교하면 책상에 누워있다가 급식시간에만 일어날 정도였으니까요. 이러한 생활 중 자투리시간에 ‘도덕교과서’를 흘겨보다가 어느 노인의 말이 인용된 페이지에 눈길이 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꿈이 무엇인지 알수 있었던 순간을요.

꿈의 사전적 정의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입니다. 제가 도덕교과서에서 봤던 인용문은 “법관이 국민으로부터 의심을 받는다면 최대의 명예손상이 될 것이다.”였습니다. 지금까지도 기억이 날 정도로 정말 인상깊었던 문구입니다. 하여 이 문구의 당사자이신 독립운동가 ‘가인 김병로’의 생애를 살펴보며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단어를 보게 되었고 “이런 것이 꿈인건가” 싶었습니다. 위의 깨달음 이후로 제가 꿈을 설정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세운 신념이 공익을 위해 지켜질 가치가 있는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꿈은 점차 시간을 두어 제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았을 때 생각해보기로 결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준 이의 꿈은 지금 현재까지도 사법부의 독립성이 위협 받고 있는 걸 보면 현재진행형으로, ‘분명히 실현되어야 할 희망이나 이상’입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저의 꿈이 상정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전 문단의 내용, 그 이후부터는 자연히 정치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정치’였으니까요. 당시가 2016년 4월 총선 직후였습니다. 한창 사회가 뜨거웠습니다. 그 상황에서 유독 돋보였던 것은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도 짐작하셨듯이 ‘김종인과 민주당’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주당의 승리를 크게 점치지 않았는데 여당을 상대로 압승을 거둬내었습니다. 저는 그저 “나이 드신 분이 정치한다고 열심히 사신다”의 생각으로 김종인이라는 인물에 대해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은 ‘김종인’이라는 인물에 대해 굉장히 뜨거운 여론을 조성했고 그제서야 눈길이 갔는데 ‘가인의 손자’라는 타이틀에 정말 놀랐습니다. ‘김종인’에 대해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세간의 평, 정치적 행보 등등.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김종인, 그의 행보 하나하나에 관심이 갔습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경제민주화’가 그의 조부인 가인의 ‘토지개혁’에서 시작됬다는 것은 일반적인 청소년의 관점에서도 흥미로웠습니다. ‘독립운동가, 정치인, 법관’의 삶을 살아오던 가인 선생의 정책적 입장이 사후 50 여년이 지난 순간에도 끈임없이 발전되온 점에서 말입니다. 더 발전될 것이 남아서인지 아직 저 역시 구체적인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외에도 김종인의 삶은 우리 국민들이 너무나도 고마워해야하는 행보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재형저축 도입, 의료보험 도입, 의료보험 전국민 대상으로 확대’. 현재의 코로나 사태를 보면 당시의 행보는 작금의 국민들을 살렸습니다.

국정농단 사건이 마무리되고 장미대선이 대두 됬을 때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은 어두웠습니다. 미국 대선 결과에 장미대선으로 인한 내부적인 갈등이 끊이지 않았기에 외교적 대응책을 마련치 못했습니다. 김종인은 애초 예정된 해외 출장을 취소하고 미국으로 가서 현지 상황을 파악하는 일정을 가졌습니다.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종채 그의 움직임은 종잡을 수 없고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노구’로 ‘항상 힘든 일을 자처하는 그’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미국행 일정 이후 저는 그가 비례대표 사퇴를 한 달여 남겨두었을 때에 의원실로 팩스를 보내어 지지의사와 대선출마를 촉구했습니다. 다음날 의원실 보좌관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그와 대화를 나눌수 있었는데 그가 통화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제게 했던 말은 “너와 같은 정치에 관심있는 청소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였습니다. 벌써 3~4년이 넘어갑니다. 그가 ‘시대전환’의 출범에 함께한 것을 보고 그때의 마지막 말이 아무 욕심없이 다음세대를 응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통화를 한, 그 해 2017년 10월 그를 그의 사무실에서 뵙게 되었습니다. 이 때도 마지막 대화가 인상 깊습니다.

그 曰: 호남은 왜 국민의당을 지지하나

나 曰: 아무래도 당 중진과 현역의원들이 호남을 고향으로하거나 지역구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 曰: 그렇다면 호남은 반성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뼈를 찌르는 짧은 담화였습니다. 오래되어 썩을대로 곪아터진 지역주의 정치를 느낄 수 있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 하는 순간마다 과거를 들먹이며 지역주의, 좌우 프레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정치현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종인, 그와의 개인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도 감사함을 느끼는 일화를 하나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고 입학한지 한달 채 되지 않아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학업이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부모님과의 실랑이 끝에 자퇴에 대한 합의를 보는 상황에서 속풀이 하는 마음으로 “에이 설마 진짜 답장이 오겠어”하며 김종인, 그에게 자퇴에 대한 의견을 여쭈었습니다. 답장은 왔고 “현실에 집착하지 말고 지혜와 인내로 앞으로 나아가라” 이 한마디 였습니다. 어느 정치인이 일개 고등학생의 사소한 문자에 답장을 할 수 있을까요. 인연을 거듭할 때마다 항상 기존 정치인의 틀을 깨곤 하십니다. 그의 답장 이후 저는 자퇴를 포기하였고 지금까지 학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2월에는 저와 또래 친구들이 운영하고 제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청소년언론 브랜드, ‘스윕포커스’와의 인터뷰 일정을 수락해주셨는데 아쉽게도 코로나 사태로 보류되어 일정을 재조정 중에 있습니다.

그와의 이러한 사소한 인연은 저에게 꿈을 꿀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저에게는 “사회의 환원이 기업의 가치가 되고 교육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나가는 세상의 흐름”이라는 꿈이 생겼습니다. 학업이라는 현실에 집착하지 않고 학업을 포기하지 않으며, 청소년 활동으로 삶의 반경을 넓혀 학교 밖에서의 경험, 지식을 쌓을 수 있었기에 이에 대한 활용 방안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되어 꿈을 찾은 것입니다. 설마 했던 답장이 없었다면 저는 그저 자퇴생이라는 사회의 굴레에 갇힌 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저는 제 꿈을 이루기 위해 청소년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이에게 그는 ‘국가원로를 가장한 노욕의 정치인’이지만 제게는 그 누구보다 존경하고 소중한 분이십니다. 제가 가장 힘들때, 누군가에는 사소할 수도 있는 희망을 전해주셨습니다. 여러분도 힘들었을 때 주변의 누구도 위로 해주지 않았는데 생각지 못한 위로의 한마디라도 해주었던 사람이 있지 않은가요?

그 짧은 한마디에 수많은 생각이 들었고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위로를 받아보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이것만큼은 김종인에 대해 단언하겠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정치를 사심없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할 정치인은 현재로서는 김종인 뿐이다.”

제게 꿈을 일깨워 주신 김종인 박사에 대해 여러분께 한가지 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인간이란 존재를 개인의 업으로 인한 오점’과 대부분의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되듯, 김종인 역시, 인연과 만남을 거듭할 수록 진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령의 연세에 젊은 세대와의 교류를 서슴치 않으시고 분야를 가리지 않는 그의 지식에 감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때론 인간적인 모습에 까도까도 양파 같은 분입니다. 어디가 끝일지도 모르는 양파와 같은 분의 행보는 항상 기대가 됩니다.

최근, 미래통합당에 총괄선대위원장으로 합류를 하셨는데 코로나발 국가위기 상황을 타파하고 보수정당에 새롭고 젊은 물결을 만들어주시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미래통합당은 못 미더워도 김종인의 사회를 향한 마지막 희생은 의심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17년 초반부터 이어왔던 짧은 인연이지만 일개 청소년 개인이 그에게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음은 저를 성장케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와의 인연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단 한 순간도 거짓으로 국가를 논하지 않고 단 한 명의 국민일지라도 위선으로써 섬기지 않았다”

항상 진심이었고 진정으로 국가가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을 시국에 맞게 제시하는 모습을 그는 늘 보여왔습니다. 사욕을 국민들에게 행사하시는 행보 또한 보이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의 생활상을 매 순간 가슴 졸이며 바라봤고 국민들의 생활이 위협 받을 때는 어느 순간부터 곁에 서있었던 것인지 모를 속도로 국민의 곁에 서서 국민의 편이 되주셨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의 대표적인 예가 ‘의료보험 전국민 확대’입니다.

저는 김종인을 2016.09 ~ 현재까지 지지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힘든 일을 자처하며 위기 때마다 세상에 항상 새로운 동력을 부여하는 그’의 자리를 대신할 정치인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음만은 ‘항상 젊고 푸르른’ 정책가이자 항상 국민에게 진심을 다하는 정치가입니다. 고령의 나이에도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청년들과 청소년들에게 한마디로라도 희망과 꿈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