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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9일 (화요일)
오피니언 전공의 파업이 실패할 수도 있는 이유

[이완 칼럼] 전공의 파업이 실패할 수도 있는 이유

어떤 파업이든, 최종적으로는 사회적 지지를 받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사회적으로 지지 받지 못하는 파업은 그저 집단 이기주의로 낙인 찍힐 뿐입니다.

저는 전공의들의 파업을 지지합니다. 전공의들의 파업은 정당하며, 용감한 투쟁입니다.정부는 의대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를 설립할 방안을 너무 허술하게 만들었습니다. 정부는 사실상 준계획경제인 우리나라 의료시장에서, 보상 체계를 개선하지 않고 의사의 공급만 늘리려 하고 있습니다.정부의 공공의대 정책이 질 낮은 의사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무엇보다, 의사도 의료 정책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처우 개선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하고, 여기에 누구도 예외는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전공의들의 파업이 충분한 지지를 받지 못해서, 큰 실패로 끝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떨치기 힘듭니다.전공의 파업은 정당하지만, 전략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행동의 당위와, 행동을 성공으로 이끌 전략은 다른 문제입니다. 전공의들은 지금 매우 전략적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습니다.구체적으로 말해서, 명분 싸움에서 밀리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전공의들의 신속한 집단 행동에 놀란 정부는, 코로나 확산이 진정될 때까지 정책을 ‘중단’하겠다며 한발 물러섰습니다. 상황이 상황인만큼, 의협과 대전협에게 휴전을 제안한 것입니다.그런데, 의협과 대전협은 정부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해 버렸습니다. 정부가 정책을 중단하는 게 아니라 철회할 때까지, 휴진과 파업에 돌입하고, 아예 사직까지 하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저는 의사들이 과연 그래야만 했는지 의문입니다. 이렇게까지 정부와 정면으로 충돌하면, 오히려 의사들이 불리하다고 봅니다.의사들이 정부의 협상안을 거절한 순간부터, 의사들은 코로나 사태와 환자들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만 내세우는 집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코로나 재확산이라는 큰 위기를 먼저 극복하자는 명분으로, 의사들에게 휴전을 제안했습니다. 정부가, 한동안 정책 추진을 중단하는 대신, 의사들은 파업을 멈추고, 본업으로 돌아가 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그런데, 의사들은 이걸 단칼에 거절해 버렸습니다.이는 코로나 극복보다 정부를 굴복시키는 일을 더 우선시하겠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습니다.아무리 의사들이 정부의 나쁜 정책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워도, 정부가 스스로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그 명분은 힘을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지금 상황에서, ‘코로나 극복’과 ‘정책 철회’가 싸우면, 전자의 승리가 너무 자명합니다.사람들이 당장 더 중요하게 여길 수 밖에 없는 명분은, ‘코로나 극복’이기 때문입니다.의사들은 정부의 합의를 거절하는 바람에, 코로나 극복이라는 더 큰 명분과 대립하는 형국에 빠졌습니다.무엇보다, 정부는 코로나 극복이라는 명분으로, 의사들을 합법적으로 제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사들이, 정부가 법이 허락하는 힘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알아서 만들어준 것입니다.

또한, 의사들은 집단 사직으로 정부와 싸우겠다고 하는 바람에, 스스로 자신들이 가진 명분을 약화시켰습니다.전공의들이 궁극적으로 환자를 위한 행동이라며 병원을 떠나버린다면, 사람들은 그런 이율배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이는, 적이 침공하는 상황에서, 군인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전공의들은, 자신들이 병원을 떠나도 환자들에게 지장이 없을 것이라 말하지만, 수 많은 의사들이 자리를 비우는 데, 정말로 지장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수 많은 의사가 병원을 그만 두는데, 환자들이 평상시처럼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대체 우리나라 병원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의미일까요? 남아 있는 의사들이 얼마나 과로하게 된다는 의미일까요?전공의들은 미래의 환자들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문제는 당장의 환자들입니다. 실제로 여러 사람들이 의사 파업 때문에 진료를 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이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환자를 위한다는 의사들의 진심을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전공의들의 사직은 환자들을 위한다는 당위와 어울리지 않는 이율배반입니다.의사들은 스스로 불리한 상황을 자처했습니다.

물론, 정부가 못 미더운 것은 사실입니다. 사태가 조금만 진정되면, 그 정책을 기습적으로 다시 들고 나올지도 모릅니다.그래서 의사들도 정부에게 중단이 아닌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막연히 정부를 불신하고만 있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꼭 지금 이 상황에 대정부 투쟁을 확대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습니다.코로나가 다시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의사가 필요합니다.혹여나 정부가 먼저 합의를 깨고 정책을 밀어 붙인다면, 의사들은 그 때 다시 싸워도 늦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때가 되면, 의사들이 더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먼저 약속을 깬 건 정부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의사들에게 모든 명분이 주어집니다.하지만 지금은 정부에게 모든 명분이 생겼습니다.

이런 저런 문제 때문에, 전공의들의 파업은 결코 장기화되어선 안됩니다. 전공의들은 결정적인 타격만 입히고 빠르게 제 자리로 돌아갔어야 했습니다.언제나, 휴전을 거절한 쪽에게 확전의 책임이 있습니다.모두가 평화를 바라고 있을 때에는, 휴전을 거부한 쪽이 나쁜 이미지를 가져갈 수 밖에 없습니다.비록 먼저 전쟁을 시작한 것은 정부이지만, 그 전쟁을 키운 건 의사 측이 되는 것입니다.왜 통합당의 김종인 대표는 의협 회장에게 파업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을까요? 왜 다른 야당들도 의사들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을까요?사람들에게 지지 받기 어려운 파업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지금이 대정부 투쟁에 나설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이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저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열심히 의사들에게 우호적인 사설과 가짜뉴스를 퍼나르겠지만, 그건 하나도 도움되지 않습니다.인터넷 민심은 가장 많은 수의 사람들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가장 많은 시간동안 접속한 사람들을 대변합니다.인터넷 민심에 속으면 안됩니다. 의사들의 파업은 생각보다 지지 받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약자에게는 명분이 전부이지만, 전공의들은 스스로 명분을 내버렸습니다.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파업을 강행하는 시기를 잘못 골랐습니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나 다름 없습니다. 사람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는데, 마땅한 치료법이 없습니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정부가 국난을 먼저 극복하자며 휴전을 제안했는 데도, 의사들은 전쟁을 선택했습니다.휴전을 제안했는 데 거절 당한 쪽은,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사생결단을 내려 할 것입니다.이제 정부가 의사들이 쥐어준 명분을 근거로, 법이 허락한 권능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의사들은 무엇으로 저항할 수 있을까요?국난 극복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사들을, 어느 정치인이 선뜻 도와줄 수 있을까요? 저는 그저 제 생각이 완전히 틀리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강한 적이 먼저 협상을 제안했을 때, 이를 거절하는 것은 어리석다.”by 니콜로 마키아벨리

이완 사회민주주의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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