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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5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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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수 칼럼] 자유민주주의 오해 풀기

‘자유민주주의’.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아니 고등학교에서 통합사회 수업 정도만 수강했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단어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사람들은 사실 드물다. 가장 흔히 활용되는 정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라는 것이지만, 그것이 어떻게 결합하여 어떻게 작용하는지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우리는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수많은 보수의 정치인들을 본다. 엄밀히 따지면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박정희 시대부터 보수는 자유민주주의를 입버릇처럼 반복해 왔다. 자유민주주의는 보수에게 정치적 공격을 위한 수사이자 선거 승리를 위한 도구, 자신들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박정희 시대의 향수가 남아 있는 보수진영의 전통적 지지층 또한 자유민주주의란 단어에 열광했다. 제19대 대선 때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를 캐치프레이즈로 한 것,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후보가 출마 선언에서 자유민주주의란 단어를 9번이나 반복한 것 등으로 미루어 보아, 보수 진영은 아직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쟁취해야 할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선진국이 채택하고, 문재인 정부의 교과서에도 실리는 자유민주주의가 진정으로 보수의 가치란 것인가? 만약 자유민주주의가 보수만의 가치라면, 현재 진보 좌파 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거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받고 있다는 것인가? 최근 사민당이 정권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독일의 자유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았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진보 세력이 이러한 보수 세력의 레토릭에 넘어가 준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오인과 오류를 바로잡는 대신,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암묵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보수진영의 전유물이라는 것에 동의해 버리고 있다. 이것은 진보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집단이라는 오해를 낳을 수밖에 없게 한다. 제 발로 적의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어이없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좌우를 막론하고 퍼져 있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오해를 깨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를 모두 담을 수 있는 상식적 체제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이 잘못 꿰어진 매듭을 풀기 위해서, 우선 개념 정리부터 해 보자.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란, 쉽게 헌법과 법률을 통해 자유와 인권을 지키는 민주주의 체제를 의미한다.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연구한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는 11가지의 요소들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규정했는데, 이를 적당하게 요약하면 ‘정치 사회적인 자유권과 평등권이 보장되고, 그것을 헌법은 명시하며, 법치주의와 권력 분립을 통해 국가 권력을 제한하고, 다원주의와 열린 사회의 원리가 살아 있는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된다.

자유민주주의란 단어를 뜯어보면 더욱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다. 자유민주주의에서의 ‘자유’는 ‘리버럴(Liberal)’인데, 이 리버럴은 ‘정부 권력을 제한한다.’라는 의미이다. 이때, 여기서 말하는 정부 권력의 제한은 ‘자유주의(Liberalism)’의 리버럴보다는 훨씬 약한 범위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적 절차, 기본적 인권, 그리고 권력을 분립하는 공화제의 원리에 근거해 정부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적 리버럴의 주된 골자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입헌적 민주주의(Constitutional Democracy)’나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와 같은 용어로 치환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법과 균형, 민주주의를 통한 권력의 효율적 통제’다. 그렇기에 헌법과 법률을 통해 국가 권력을 제한하고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입헌적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사실상 동의어이다.

여기서 바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의 정체가 드러난다. 자유민주주의는 애초부터 체제와 절차에 가깝고 그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라서, 특정한 가치의 적극적 추구를 지향하지 않는다. 즉, 자유민주주의는 엄격한 자유시장 경제와 작은 정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체제가 ‘절대’ 아니다.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합의만 제대로 기능하고, 아주 기본적인 자유권과 평등권만 해치지 않는다면 오히려 얼마든지 경제를 규제할 수도 있는 체제가 바로 자유민주주의다. 다시 말해서, 자유민주주의는 보수 진영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다.

이런 배경지식을 가지고 보면,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면서 큰 정부를 이루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확실한 권력 분립, 세계 최고 수준의 언론자유지수로 대표되는 양심과 표현의 자유의 광범위한 보장, 민주적 절차의 착실한 준수가 이루어져 있는 북유럽 국가는 완벽에 가까운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보수 진영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오해를 통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수사를 독점하는 중이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가 경제적 자유와 절대로 뗄 수 없는 관계라고 굳게 믿으면서, 그걸 통해 진보 세력을 반체제 세력이라고 공격한다. 만약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체제고, 자유민주주의가 경제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체제라면, 진보 세력은 분명한 반체제 세력이 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저 논리는 틀렸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명제는 사실이지만, 자유민주주의가 경제적 자유주의를 추구한다는 명제는 거짓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자유민주주의란 단어에 대한 애착과 향수가 너무 강한 보수 세력은, 자신만의 구체적인 비전과 철학을 개발하는 걸 포기하곤 자유민주주의만 반복하는 중이다. ‘나는 정치적 상상력이 부족하고, 매우 무지하며, 철학이 빈곤해요’라는 자기 고백이다.

하지만 진보 세력 또한 잘못된 반박을 하고 있다. 진보 세력은 어이없게도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명제를 부정하면서, 자유민주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추구한다는 명제를 암묵적으로 동의해 버리고 있다. 사실상 자유민주주의는 보수의 전유물이라고 인정하는 꼴이요, 스스로 보수의 반체제 프레임에 걸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진보 세력의 특징은 ‘제헌 헌법’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제헌헌법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없으며, 경제적 규제와 사회민주주의적 개념들이 담겨 있다면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로 출발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헌법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없으며, 경제적 규제 개념의 존재를 이유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이라는 지각은 없는 것 같다.

그들은 여기에 한술 더 떠, 제헌헌법에 의하면 경제적 자유주의는 반헌법적이라며 보수 세력에 근본이 없다는 역공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체제 자체에 자신들의 이념성을 담으려는 점에서는 진보도 사실상 보수 세력과 똑같은 짓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제6공화국 시대에 살고 있고, 현행 헌법은 경제적 자유에 있어서 비교적 포괄적인 정의를 취하고 있다. 애초에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옹호하는 이념을 포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제헌헌법은 부분적인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양쪽 모두, 이제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오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사실상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를 한다. 두 세력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보수는 진보가 반체제 세력이라는 공세를, 진보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을 끝내야 한다. 서로의 이념을 체제에 박아넣어 상대 진영의 입을 막으려는 편협한 정치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철학으로 상대 진영과 토론하는 선진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진정으로 위대한 이유 중 하나는 그 어떤 다른 체제보다 각자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에 개방적이라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자유로운 토론이야말로 사회 발전의 원동력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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