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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4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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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칼럼] “숙의 민주주의는 관심부터 시작합니다.”

요컨대 우리 대한민국은 대의 민주주의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나, 민주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그저 무조건 대신 의논하게 두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정치에 참여하며 결정에 개입하고자 하는 정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를 참여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부르는데, 단순하게 선거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사회운동 등을 통해 가변적이고 실험적인 정치를 가능케 하도록 열린 정치제도를 의미합니다.

군사정권 시절을 마무리하기 위해 당시 김영삼 총재 등 많은 야권 인사들이 앞서서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나섰으며, 그 뒤로 대학생들이 학생운동을 일으키며 군사정권에 대항했고, 이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루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불타오른 참여 민주주의는 본래 1949년에 제정된 바 있지만, 군사정권 하에 중단되었던 지방자치제에도 불씨를 옮기게 됩니다. 1995년 기초 의회 의원과 기초단체장, 광역시의 광역 의회 의원과 광역단체장, 그리고 도 단위의 도 의회 의원과 단체장 선거를 하면서 본격적인 지방 자치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2020년 지금에 이르러서는 IT 기술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급, SNS와 Youtube 같은 미디어 매체들의 개발과 보편화를 이루면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는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접할 수 있고, 그 정보의 깊이는 매우 가벼운 것부터 연구 학술적인 분야까지 폭넓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 뒤에는 지식 외에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지혜까지 갈고 닦게 되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은 그저 어미 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만을 받아먹는 아기 새 처럼 받아먹는 탄환이론의 근거가 아닌, 스스로 정보를 습득하고 비교 분석하여 판단할 수 있는 지능을 얻은, 한 단계 성장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국민이 성장했는데 사회도 성장 안 하지 않을 보장은 없지요. 그래서 나온 말이 바로 숙의 민주주의입니다. 숙의란 익을 ‘숙’에 의논할 ‘의’를 붙여 만든 말로, 대신 권한을 받은 누군가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특정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하는 과정을 갖은 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이는 직접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와는 결이 다릅니다. 바로 그냥 참여하는 게 아니라 공공 의제에 관한 토론 과정에 국민이 직접 참여하여 근거를 두고 토의를 거쳐 과학적 결론을 내림으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는 민주적 절차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숙의 민주주의에 한 발 더 다가서기 위해 그간 많은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전 정부에서는 대통령직속으로 청년위원회를 구성하여 정책에 대해 논의하고 의제 발굴 사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현 여러 지자체에서는 협치라 하여 민간이 직접 관의 행정에 대해 평가하고 또 다른 의제를 발굴하기도 하는 장을 마련하곤 했습니다. 필자가 거주하는 서대문구에도 협치분과라 하여 여러 주제에 대해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공부하고 의견을 나누는 장이 있으며, 서대문구의회 국민의힘 소속 구의원들은 확실한 의정 평가를 위해 의정 모니터단도 구축하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자, 의논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으니 이제 숙의 민주주의를 이루는 것은 시간문제겠지요?

아닙니다.

장이 마련되었어도 숙의 민주주의를 이루려면 부족한 게 있습니다. 바로 관심입니다. 아무리 의논의 장이 마련되었어도 관심이 없으면 그것은 미숙에 그칠 따름입니다.

실제 사례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지난 8월 19일, 서대문구의회 입법예고 게시판에 한 글이 올라옵니다. 바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혈액 투석환자 교통비 지원 조례안’을 제정함에 따라 그 취지와 주요 내용을 미리 알린 것이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보면 무슨 문제가 있나 의구심이 드실 겁니다. 하지만 이 조례의 문제는 바로 취지에 있었습니다. 무소속 최원석 구의원의 대표발의로 더불어민주당 박경희, 김양희, 안한희, 유경선 구의원이 발의한 이 조례는 정기적인 투석치료로 인해 환자와 가족들이 국내외 여행의 기회가 사실상 없으므로 여행 및 힐링의 기회를 주고자(충격적이지만 실제로 제안이유에 쓰여진 단어입니다) 왕복 항공교통비를 일정량 실비로 지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조례안을 예고하고 이에 해당하는 관계 법령으로 장애인복지법 제30조, 지방자치법 제9조제2항제2호라목을 들었습니다.

참고로 장애인복지법 제30조는 장애인의 삶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등은 이용료 감면이나 세제상의 조치 등을 통해 경제적 부담을 경감 해야 한다는 법령으로, 3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혈액투석 또는 복막 투석치료를 받는 이를 장애인으로 규정하는 현행법상 장애인은 맞으나, 이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 주어야 하는 법령이지 혈세로 이들이 힐링하도록 여행에 사용할 왕복 항공교통비를 지급하라는 법령이 아닙니다.

또한, 지방자치법 제9조제2항제2호라목은 지방자치단체의 사무 범위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주민의 복지증진에 관한 사무 안에 노인·아동·심신장애인·청소년 및 여성의 보호와 복지증진을 둔 법령이지, 혈액 투석환자와 그의 가족들의 힐링을 위해 여행경비를 보태라는 법령이 아닙니다. 요컨대 여행이라는 것은 본인의 휴식을 위해 하는 것이지 삶에 있어서 필수요소와 같이 보호해야 하는 것 혹은 꼭 필요하여 복지를 통해 도움을 주어야 하는 요소는 아닙니다.

더군다나 혈액 투석환자의 여행이 힘든 것은 경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투석이라는 제한된 치료방식에 있습니다. 투석은 인공신장기를 이용한 특수한 치료로, 그저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아서 진행되는 치료가 아니기에 여행이라는 행위가 어려운 것입니다.

필자는 본 조례가 무슨 근거로 힐링을 위한 여행비 지원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질병 후 힐링이라는 감정적인 이유로 혈세가 투입되어야 한다는 점은 반대하는 바입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격리되고 폐가 망가진 분들을 위한 것도 아니고 굉장히 뜬금없다는 견해입니다. 일설에서는 혹여 발의자나 발의자의 주변에 혈액 투석환자가 존재해 임기 말년에 혈세를 타 먹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수위 높은 비판을 가하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이라는 것이 생과 업에 관련된 것도 아니고 분명한 여가활동에 속하는 행위인데 이들만을 특정하여 혈세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공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필자는 이러한 조례가 통과된 후에 이 사실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반대하는 이유와 의구심을 제기한 필자 역시 관심이 부족한 탓에 입법예고가 진작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줄 사전 이의제기와 반대 의사는커녕 조례가 통과되는 날에도 한 명의 주민으로서 목소리를 내지 못 하고 뒤늦게 황당해하며 이렇게 글을 적을 따름이라는 점입니다. 이에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친애하는 독자께, 필자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숙의 민주주의는 남이 해 주는 것도 아니고 장이 마련되었으니 완성되는 것도 아니며 타인도 아닌 오로지 본인의 관심을 통해 한 걸음 다가간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필자는 서대문구에서 지역 모임에 참여하고 협치분과에도 합류하여 의제를 발굴하고 토의하며, 무엇보다 지역 정치인으로 활동해왔기에 어느 정도 숙의 민주주의로 가는 길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 조례의 통과사건을 계기로 필자는 가슴을 치며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역에서의 조례 입법예고도 꼼꼼하게 살피지 않는 자가 무슨 숙의 민주주의로 한 걸음 다가갔다고 느낄 수 있었을까요.

필자는 상기한 조례가 통과되었긴 하나, 수정안 혹은 폐기될 수 있도록 가능한 일을 동원하여 혈세나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참여 민주주의로는 완벽하겠지요.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새로 입법 예고될 조례들을 시간 내어 하나하나 살펴보고 검토하여 의견을 제시할 줄 아는 자세를 가꾸기 위해 더욱 증진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가 사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하나하나 관심 가져 지켜보고 스스로 판단하여 의견을 발표함으로 의논하는 사회, 그것이 우리 모두 갈고 닦아 이루어내는 자유 대한민국의 숙의 민주주의이겠지요.

그러한 날을 고대하며, 하루라도 더 빨리 이루기 위해 이만 긴 글을 마치고 입법 예고란을 살펴보러 인사드리겠습니다. 필자의 긴 글을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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