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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5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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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칼럼] “숙의에 훌륭한 대화수단은?”

지난 글에서 숙의 민주주의의 시작은 관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글자 그대로 한 명의 시민은 자신이 사는 도시가 돌아가는 꼴을 보며 스스로 정보를 취득하고 안건에 고민하여 타당한 결론을 내고 이것이 타인과 대립할 때에는 토의를 통해 해답을 도출할 때에 비로소 숙의 민주주의로 가는 첫걸음을 걸은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관심을 충분히 가지고 있고 이를 표출하는 방법, 그러니까 관심 가득히 정보를 취득해 고민하고 토의를 통해 해답을 도출하는 방법에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물론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필자 역시 숙의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선진화로 가는 시대의 사람이기에 정답이라고 딱 잘라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필자가 연구한 내용을 토대로 글을 풀어놓으면 독자께서 고민해 도출하실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1차 성징이 막 끝난 어린이는 본인에게 장애가 닥치거나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아시나요? 바로 울면서 화를 내는 겁니다. 물론 필자가 기준으로 잡는 어린이는 ‘말을 할 줄 아는’ 때 이후부터로 한정합니다. 말을 할 줄 알지만,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1차 성징이 막 끝난 어린이는 울면서 화를 내기 마련이지요. 이를 보는 어른이나 혹은 그들보다 조금 더 성장한 이들은 달래주면서 그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거나 그에 상응하는 해답을 제시하기 마련입니다.

즉, 본인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아 울거나 화를 내며 이른바 떼를 쓰는 모습은 대화는 가능하나 1차 성징이 막 끝난 어린이와 같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지요.

네? 사람 성격이나 인생이 다른데 어떻게 그렇게 딱 정의할 수 있냐고요? 음, 우선 날카로운 질문? 지적? 뭐 아무튼 감사합니다.

물론 성격이나 살아온 배경에 따라 의도치 않게 눈물이 터지거나 화가 치밀어오르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이 글에서 필자는 그러한 이들을 비난하거나 낮추어 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해결책을 찾는 모습 혹은 장애를 극복하고자 이에 대응하는 자세를 돌아보기 위함입니다. 이 점은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야기를 다시 돌아가서, 쉽게 말해 울고불고 화내며 떼쓰는 해결법은 그야말로 ‘유치한’ 수준이다는 말입니다. 본인의 뜻과는 다르게 진행된다고, 혹은 본인에게 장애가 닥쳤다고 떼를 써서 타인이 이를 해결하거나 혹은 결정권자가 달래듯 회유하여 해결하는 방식은 참으로 유치하고 또 숙의하지 못한 민주주의적 행동이라 보는 것이지요. 이러한 행동은 21세기 대한민국 자유 민주주의 사회 아래서 더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견입니다.

다른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본인에게 장애가 닥치거나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사실상 숙의보다는 아주 원천으로 돌아가는, 말 그대로 ‘제로’부터 시작하기 위해 현실 자체를 뒤집고자 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탈레반이나 ISIS의 무장테러도 이러한 방법의 일환이지만,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대표적인 사례로 일제강점기 시절 의열단과 같은 무장폭력 독립열사들의 의거를 예로 들겠습니다.

기회주의자적인 정치인들로 인해 일본제국은 대한제국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병합했고, 이에 분노한 옛 대한제국 국민 중 소수의 몇몇이 이러한 무장폭력 의거에 나섰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로 대동아 공영권으로 식민지 정책에만 열중하던 일본제국은 동양평화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일본인 중에서 이에 감화된 이들도 나타났습니다(여담으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대해 연구하는 일본인은 현대에도 존재합니다. 류코쿠대 경영학부 교수 시게모토 나오토시, 리쓰메이칸대 정책과학부 교수인 가쓰무라 마코토 등이 그러한 인물이지요.) 또,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중국 국민당 정부와 장제스가 큰 감명을 받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지원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무장폭력을 활용한 방법은 시대상으로 보았을 시, 사회 전반을 아예 바꿔버릴 정도로 대단히 효과적이고, 대항의 의지를 확실하게 보임으로 뜻을 같이하는 동지에게 큰 고양을 주는 효율적인 행위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가거나 혹은 신체를 훼손하게 되는 불상사를 낳으며, 때때로 복수가 복수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도박적인 행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때때로 무장폭력을 통해 큰 변화를 추구하려 했으나 오히려 이를 빌미로 더 강한 힘의 논리가 이를 덮어 버리기도 합니다. 프랑스대혁명 후 파리 시민에게는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도래할 것이라 믿었지만, 결국 맞이한 것은 군사적 힘을 등에 업고 제정을 도입한 황제 나폴레옹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직 자유 민주주의가 계몽되지 않은, 이를테면 일제강점기의 대한제국이나 현 북한과 같이 민주주의의 ㅁ도 도래하지 못한 곳에서는 이러한 무장폭력의 투쟁이 가장 효율적인 변화의 방아쇠가 되는 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만큼 자유 민주주의가 국민에게 계몽되고 사회 전반부에 도래하여 숙의 민주주의로 가고자 한다면 가장 지양해야 하는 방법입니다. 2차 세계대전 후반부에 당시 이승만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께서 무장투쟁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토의의 장에 나서서 외교적인 입지를 다져야 한다고 외치셨던 이유도 이 이유와 비슷합니다.

무장폭력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비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대중을 활용해 요구의 물결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본인에게 닥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같은 장애요소를 가진 이들이 모여 뭉치거나, 뜻하는 바가 같은 이들끼리 뭉쳐 사회를 향해 같은 목소리를 외치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요구의 물결로 파장 일으켜 이들을 주목하게 만듭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헌법에는 이러한 방법을 보장하고 있으며,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로 이를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본인에게 닥친 장애를 해결하기 위해 혹은 자신이 뜻하는 바를 사회에 이루기 위해 같은 지향을 지닌 대중을 활용, 요구의 물결을 만들어냅니다. 때때로 언론을 활용함으로 대중없이 홀로 나서서 큰 물결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이 방법의 가장 대표적인 역사적인 사건으로는 헤이그 특사의 호소와 3·1운동을 들 수 있습니다. 또,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한 대항도 이에 해당하나, 대항을 위해 무장폭력 혹은 무력을 행사한 사건을 제외하고, 그저 떼를 써서 얻어낸 사건을 모두 배제한 후의 사건들로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떼를 써서 결과를 얻어낸 방법은 이 방법과 유사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는데, 다릅니다. 본 방법은 떼를 써서 대중의 동정심이나 회유를 받아 결과를 얻어낸 방법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대중을 끌어들여 활용한 방법입니다.

현대에는 ‘정당’과 ‘시민단체’가 이러한 방법을 효과적으로 활용합니다. 정당은 자신들의 지향점을 대중에 호소하여 지지를 얻고, 지지를 바탕으로 정권을 창출해 정당이 추구하는 바를 실현합니다. 시민단체는 지향하는 바가 같은 시민이 모여 대중을 향해 사회에 뜻하는 바를 동조하도록 하여 개화해 구현합니다. 필자가 지난 글에서 소개했던 협치분과도 이에 해당합니다.

대중의 지지를 확고하게 받거나 대중이 그들이 뜻하는 바에 동조하도록 하려면 무엇보다도 무력이 아닌 대화가 필요한 법입니다. 철기시대도 아니고,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도 아닌데 지도자의 무력에 따라 지지세를 과시하는 것은 숙의하지 못합니다. 현재 자유 대한민국에서는 충분히 토의를 통해 과학적 또는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고 장애를 극복하고자 하며, 뜻하는 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이루고 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예측까지도 자세히 설명할수록 대중은 더욱더 빠져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방법은 앞선 두 방법에 비해 성숙한 방법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방법으로는 바로 투표입니다. 투표는 사실상 가장 효율적인 대화수단이며 대화를 하지 않고도 대화할 수 있는 훌륭한 대화수단입니다. 대의 민주주의로 운영되고 있는 현 대한민국에서는 더욱이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혹자는 투표를 두고 침묵의 태풍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만큼 시민 한 명이 받는 투표지는 달랑 종이 한 장이기에 별거 아닌 것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사실 영화 아저씨의 대사처럼 아직 한 발 남았다며 결정타를 먹일 수도 있는 탄환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투표는 현재 대한민국 시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각종 정무직 공무원의 선거부터 시작해서, 사회 전반부에 펼쳐진 모든 다수결 원칙을 이용한 행위를 모두 일컫습니다.

예를 들어, 동아리의 회장을 선출할 때에도 동아리의 취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이를 이끌 수 있는 사람에게 투표하는 법입니다. 아니 진짜 많이 양보해서 적어도 자신이 호감이 가는 사람에게 투표하는 법이지요. 본인의 호감이 동아리의 대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례를 볼까요? 국회의원들이 입법안을 내놓았다고 해서 바로 그냥 시행되는 게 아니라 의결을 해야만 해당 법안이 시행되고 근거한 기간에 따라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따라서 국회의원 중 해당 법안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의원이 있으면 해당 발의에 반대에 투표할 것이고, 부결되면 효력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한 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한 ‘투표’로 인해 대한민국 내의 법이 바뀌니 이 얼마나 효율적입니까?

혹은 투표하여 선출한 정무직 공무원이 하는 꼴을 보니 영 아니더라 싶으면 투표를 통해 다음 선거에서는 정무직 공무원을 하지 못하도록 낙선시킨다던가 다른 이에게 해당 정무직 공무원직을 맡길 수도 있지요.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정무직 공무원이 시민의 투표로 인해 하루아침에 백수가 될 수도 있으니 이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정당은 이 투표 한 장 한 장을 위해 뺨을 맞고도 헤헤 웃으며 감사하다고 고개 숙이고 본인들의 지향을 대중에게 선보이기 마련이며, 때때로 선거 결과를 통해 특정 정당에서 정무직 공무원을 다수 배출하여 그렇지 못한 정당이 투표로 시민에게 회초리를 맞았다는 등, 반성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투표는 앞선 방법들보다 가장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무직 공무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그리 자주 있는 게 아니고 일정 기간 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방법이 효율적으로 적용하려면 무엇보다 투표라는 행위 자체를 법으로 근거하여 보장해야 하며, 부정한 방법이 통하지 않도록 청결하고 법치 안에서 공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앞선 세 가지 방법 중, 법적 보장이 뒤따라야 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미호요’라는 게임회사 만든 인기 모바일게임 원신에 보면 육중한 쇠 방망이의 이름을 훌륭한 대화수단이라고 해놓았더군요. 웃자고 하는 말일 것이지만, 물론 숙의에 훌륭한 대화수단은 과연 무엇인가 하면 딱 답을 내놓기는 어렵습니다. 육중한 쇠 방망이가 훌륭한 대화수단인 사회나 시대가 있는 법이며, 대중의 반응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가는 사회와 시대가 있는 법입니다. 사회적 나이에 따라, 혹은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시민이 보장되는 범위에 따라 방식을 행했을 시의 효과와 결과가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보았을 때, 2021년 현 대한민국에는, 아니 좁혀 들어가 지금 독자께서 거주하시는 지역의 행정은 독자께서 뜻하는 바와 일치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독자께서는 뜻하는 바를 이루시겠습니까?

정답은 없습니다. 이제 방법을 떠올린 당신이 나설 차례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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