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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9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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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수 칼럼] 최재형 발언, 묻혀버려야 할 망언이 아니라 논의해야 할 아젠다다

“국가가 국민의 삶을 전 생애에 걸쳐 책임지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개인이 일 속에서 행복을 찾을 때 우리는 함께 잘 살 수 있습니다.” – 2018년 11월 1일 문재인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이 짧은 글귀를 보고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 글을 보고 있는 분들 중 누군가는 얼핏 보고 당연한 거 아니냐,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국가는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하고,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고, 개인은 노동을 통해서 자아실현을 해야 한다는 말들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 말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질 기회를 놓쳐버리고 만다.

‘국가는 국민의 삶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이 질문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예 던져지지 않거나, 국가는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토대 아래 매우 제한적으로 다뤄져 왔다. 국가의 역할을 규정하는 토론과 논의가 너무나도 적었기에, 우리는 당연하게 ‘국가는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명제를 참으로 받아들여 왔다. 그런 사회에서 너무 오래 살아온 나머지, 우리는 한 대권주자의 지극히 정상적인 문제제기에도 ‘망언’이라는 낙인을 스스럼없이 찍으며, 이 질문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것은 이건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국민의 삶을 국민이 책임져야지, 왜 정부가 책임집니까? 국민의 삶을, 정부가 모든 삶을 책임지겠다는 게 바로 북한 시스템이거든요.”

최재형 후보가 국민의힘 초선의원 대상 강연에서 꺼낸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온 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 이제 드디어 대한민국에도 이런 담론이 등장하는구나. 국가의 역할은 명확히 규명되어야 하고, 개인의 삶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책임지는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 사회에도 생기기 시작하는구나, 라고.

그런데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치권엔 거의 없는 것 같다. 발언이 나오자마자,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원내대변인은 ‘망언 퍼레이드’, ‘무지를 서슴지 않고 드러냈다.’와 같은 원색적인 표현으로 비난을 퍼부었다. 또 다른 국민의힘 대선후보인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에 ‘도대체 최재형 후보님은 무엇을 책임지러 대통령 선거에 나오셨냐.’, ‘무언가 단단히 착각을 하시고 계신 것 같은데’와 같은 강력한 어조로 비판 게시물을 남겼다. 여기에 즉각 해명하는 캠프의 모습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야권 패널들이 방어하느라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최재형 후보가 누군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만 같다. 이 일련의 모습은 곧 우리 사회에서 최재형 후보의 발언이, 정상적인 검증과 비판,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단죄하고 고쳐야 할 악으로 인식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정말로, 이 말이 실언인가? 정말로 최재형 후보가 하지 못할 말을 했나? 이 말이 심판해야 마땅한 죄악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유는 본질적으로 책임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각 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로, 누군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그 행동에 대한 책임 또한 각 개인에게 있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내 마음대로 행동을 해 놓고, 그 행동에 따른 결과는 나 몰라라 한다면, 그것은 자유라고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자유는 책임을 동반하고, 책임은 자유를 동반하게 된다.

이런 전제에서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는 것은 곧, 국민 개개인의 자기결정권을 국가에게 위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가가 개인을 책임지게 된다면, 국가는 그에 따른 등가교환의 산물로서 국민에게 무언가의 권한을 행사할 명분을 취득한다. 이 명분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언제든 실체 있는 규제가 되어 각 개인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 게다가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범위가 늘어날수록, 각 국민은 국가에 점점 귀속되고 의존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국가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회상으로 연결되고, 그 사회상은 또 다시 국민들을 더 국가에 의존하게 만든다. 그러면 어느 순간, 국민을 책임지는 국가의 권한이 줄어드는 시점이나, 더 이상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각 개인은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하고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이런 말을 하면, 도대체 국가는 뭘 해야 하냐는 반론이 반드시 들어온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국가가 하는 역할은 오로지 국민 개개인의 삶을 책임지는 것 뿐인가? 국가는 안보와 치안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고, 법을 통해서 자유와 인권에 대한 위협을 관리하며, 민간이 깔 수 없는 최소한의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한다. 국민의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우고, 각 개인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닦는다. 국가는 국민의 삶을 직접 책임지지 않더라도 여전히 할 일이 있다.

거기다, 최재형 후보는 국가가 국민에 대해 가지는 모든 책임에 대해서 부정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개인을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상황까지 끌어 올려주는 역할, 스스로 책임지기엔 너무나도 거대한 풍파를 맞은 개인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쿠션이 되어주는 역할은 필요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삶은 국민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는, 큰 원칙이다.

또 한 가지 들어오는 비판이, ‘간섭’과 ‘책임’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더라도 국가가 국민의 삶에 간섭하지 않으면 되니까,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것은 자유의 침해가 아니라는 견해다. 얼핏 보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둘은 그렇게 무 자르듯이 나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국가가 국민이 빨리 다시 일할 수 있도록 근로장려금을 보조하는 것은 책임이다. 그런데 이 근로장려금이 빨리 일자리를 구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동반한다면, 그것이 간섭인지 아닌지는 논란거리다. 한 가지를 예를 더 들어 볼까? 망하는 기업에 재정을 투입해서 기업을 살리면, 그 기업은 경영상 국가의 이런저런 간섭하에 놓이게 된다. 이와 같이, 실제 국가가 하는 일에서 ‘간섭’과 ‘책임’은 완벽히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서 위에도 상술했듯이, 국가의 책임이 커지면 커질수록 국가에 대한 국민 의존도가 높아지고, 이것은 충분히 간섭의 영역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최재형 후보의 발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왜 우리가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것을 당연하게 느껴서는 안 되는지, 왜 국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한지, 왜 각 개인의 책임이 줄어든다는 것은 자유가 줄어드는 것으로 연결되는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건전한 토론의 대상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망언 취급을 받으며 우리 사회에서 퇴출되어서는 안 된다.

한 발짝 떨어져서, 이제 이 발언이 우리에게 왜 망언으로 들리는지 바라보자. 아까 말했듯이 사람들은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라는 말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다. 이것은 곧많은 정치인들이 내가 국민들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인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그런 주장은 훨씬 정치인 본인들에게 유리하다. 당신이라면 뭐라도 주겠다는 사람에게 호감이 가지, 뭔가를 너에게 주는 건 위험한 행동이라면서 배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호감이 가겠나. 따라서 정치인들은 자연스럽게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맞다고, 좌우를 가리지 않고 말해 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주장은 사실상 우리 정치권의 거대한 성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나는 최재형 후보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실제 득표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몰라도, 소신껏 국가가 국민의 삶을 전적으로 책임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국민들 앞에서 내세운 것은, 정치인으로서 대단한 용기다. 그것이 용기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치 신인의 정치 문법에 대한 무지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참 많은 함의가 담긴 발언임은 틀림없다.

우리 정치권에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어야 할 이 말을, 부디 망언이라 치부하며 날려보내지 말길 바란다. 국가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최재형 원장이 던진 이 발언은 소중한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너무 많은 영역을 함부로 규제하고 간섭하지는 않았는지, 주제넘게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을 책임지겠다면서 오지랖을 떨지는 않았는지 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반대로 국가가 책임지고 맡아야 할 일들을 명확히 규명함으로써 정말 해야 하는 일을 유기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과 국민에 대한 억압이 당연했던 군부 독재 시대와, 절차적 민주주의가 최우선이었던 민주화 시대의 일차원적인 국가관은 이제 명실상부한 선진 대한민국에서 유효하지 않다. 이제는 국가가 어느 영역에, 어떻게, 왜, 언제, 어떤 돈으로, 누구를 위해 개입해야 하는지를 규정해야 한다. 대통령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꿈꾸는 국가관과 바람직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내비칠 수 있어야 한다. 최재형 후보의 이번 발언은 그 신호탄이자, 논의가 더 넓게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긍정적 시그널이다. 앞으로의 대선 경선 과정에서, 대선후보들의 더욱 과감하고 심도 있는 국가 역할 재정의가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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