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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9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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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수 칼럼] 민주당에 드리는 당부 : 노무현 팔이를 멈춰라

2004년 3월 12일,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모두 본회의장을 나간 후 야당의 총연합을 통해 압도적인 표로 가결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탄핵이었던 이 일은 대통령 권력에 대한 거대한 함의를 주었던 것과 동시에, 촛불집회의 기원을 만들기도 했던,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한국 현대사에 거대한 한 획을 그은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2021년, 국가의 미래와 존망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뜬금없이도 이 사건이 등장한 것은 참 의아하다. 그것도 후보 한 명이 이 사건에서 찬성표를 던졌냐, 반대표를 던졌냐, 라는 논란으로 말이다.

“이 후보님께서 스크럼까지 짜 가면서 탄핵 표결을 강행하려고 물리적 행동까지 나서서 하셨던 것 같은데, 사진에 그렇게 나오더군요. 그런데 탄핵 표결에는 반대했다, 반대표를 던졌다고 하니 제가 납득이 좀 안 됩니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이낙연 당시 의원은 반대투표를 명백하게 했습니다. 뉴스 검색만 하면 확인할 수 있는 팩트를 이재명 후보 측에서 찬성했냐, 반대했냐 이렇게 물은 것은 탄핵 프레임을 덧씌우려는 부당한 네거티브다, 이렇게 말씀드리고요.” -최인호 이낙연 캠프 상황본부장

이 사건으로 이낙연 후보를 공격한 이재명 후보의 진의는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는 프레임을 씌울 수 있다면, 자신이 김대중 – 노무현 – 문재인의 정치적 자산을 잇는 후계라고 주장하는 이낙연 후보의 정통성을 파훼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터이다. 문제는, 도대체 ‘정통성’이 왜 선거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냐는 것이다. 여기가 왕정 세습국가도 아니고, 시대에 뒤처져도 한참 뒤처진 ‘순혈주의’가 21세기 민주공화국에 웬 말인가.

나는 이 사건이 일어난 해에 태어난 2004년생이다. 그때의 역사적 함의를 책으로 배운 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권을 쥐고 표를 행사한다. 올해 성인이 된 2002년생들은 당시 2살이었다. 그런 세대의 다수에게, 이 사건은 광복, 6.25 전쟁, 5.18 민주화 운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사건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민주당의 대통령 경선 문화를 젊은 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 사건은 민주당이 얼마나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집착하는지 알려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의 1층 입구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 동상이 세워져 있다. 대통령 선거에 등장한 모든 후보는 하나같이 입만 열면 ‘노무현 정신’을 들먹이는데, 이는 상술한 사건 당시 누구 보다 앞장서서 탄핵을 부르짖었던 추미애 후보도 매한가지다. 이 예들은 모두 민주당에서 노무현이란 인물이 당의 정신이자 지주 그 자체이며, 모든 사람이 반드시 그 정신을 잇고 계승해야만 하는 전통과도 같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노무현이란 인물은 민주당의 체질 자체를 훨씬 진보적인 방향으로 바꾸고, 민주당의 지향을 보다 선명하게 만들어준 인물이다. 대역전 드라마로 국민들과 지지자들에게 엄청난 감동과 희열을 선사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아쉬운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많은 민주당계 사람들은 그 이유를 노무현을 흔들었던 수많은 기득권 때문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이후, 많은 지지자들은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비통함을 느꼈다. 이후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를 교훈 삼아 모든 정치적 선택에 노무현을 대입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개혁 세력에 반발하는 기득권 세력의 반동’으로 취급하고, 민주당계 정치인이 공격의 대상이 되면 ‘우리가 지켜야 한다’ 운동이 벌어지는 모습 등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짙은 트라우마를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의식적인 것인지, 무의식적인 것인지와 관계없이 말이다.

자신들에게 표를 주는 대상인 지지자들과 당원들의 정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민주당계 정치인들은 노무현이란 인물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탄생한 표현이 바로 ‘노무현 정신’이다. 이 노무현 정신이라는 수사는 수많은 민주당계 정치인들의 입에서 오르내렸고, 곧 민주당의 교리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곧 ‘누가 누가 노무현을 잘 계승하나’ 경쟁으로 이어졌던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수순이었을 터이다. 글을 열기 위해 언급한 ‘이낙연 노무현 탄핵 찬반 논란’은 이러한 배경에서 바라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과감히 민주당을 향해 말하고 싶다. 이 ‘노무현 정신론’이 민주당이 더욱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그러니 이제 노무현에서 졸업하라고 말이다.

이 ‘노무현 정신론’이 만들어낸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우선, 노무현 정신은 민주당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노무현 정신론이 어떤 구체적 실체를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무현 정신론은 본질적으로 ‘노무현이 못다 한 과업을 후대의 민주당이 이루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의 정치적 목적은 토론을 통해 좋은 해결책을 찾고 그걸로 더 나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아닌, 이미 과거에 존재한 한 인물의 정견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그걸 구현시키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다.

거기에 노무현 정신은 다른 의미로도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걸림돌이 된다. 정치인의 마이크는 한정되어 있다. 사람들이 미디어를 소비하는 양에는 한계가 있고, 그중에 언론의 주목을 받아 사람들에게 전달될 주요한 정보는 더욱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신론은, 그 한정된 마이크를 정치인 개개인의 미래 비전과 정책을 소개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돌아가신 정신적 지주를 칭송하고 계승하겠다는 맹세의 노래를 부르는 데 쓰게 만든다. 이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민주당의 비전을 들을 기회를 잃어버린다.

또 노무현 정신은 소수의 입을 틀어막는 기제로도 작용한다. 노무현 정신이 지지자들과 당원들에게 안겨준 트라우마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역시 진보 분열로 인한 탄핵의 트라우마일 것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다수 의견에 반대하는 내부의 목소리가 나오면 그것을 때려잡고 탄압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러한 지지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치인들은 당연히 입을 닫고, 조용히 정신적 지주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의 토론 문화를 크게 축소시켜 버린 ‘문자폭탄’ 운동 또한, 본질적으로 노무현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 더해서, 이러한 문화 말고도, 내용적인 측면에서 역시 노무현 정신론은 민주당의 공론장을 크게 축소시킨다. 노무현 정신론은 사실상 당의 정체성처럼 여겨지고 있으므로, 당원들은 모두 암묵적으로 이에 동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노무현의 정견에 반하는 이야기는 민주당에서 꺼낼 수 없다. 물론 부차적인 부분에서 노무현의 정견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건 가능하겠지만, ‘노무현 정신에 반한다’라는 공격이 먹히는 환경에서 당연히 노무현 정신의 중추에 반하는 것들은 결코 민주당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에게 더욱더 깊게 새겨질 상처도 큰 문제다. 상술했듯이 그들에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가슴 아픈 기억과 트라우마가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그러므로 민주당의 정치인들이 노무현이란 사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이용할수록, 지지자들에게는 노무현의 아픈 기억이 더욱 크게 각인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민주당의 지지자들은 언제까지나 노무현의 슬프고 아픈 기억에 묶여 계셔야만 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한번 외친다. 민주당은 이제 노무현으로부터 졸업하시라. 진정으로 노무현 정신을 따르고 싶다면, 말로만 노무현 정신을 떠들면서 민주당을 망칠 것이 아니라 노무현의 가치를 정확하게 확립하여, 정책과 입법으로 그걸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시라. 더는 돌아가신 비운의 정치인을 자신들의 정치적 잇속을 챙기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면서, 대한민국 민주 진영의 정치문화를 망치고 대한민국을 망치지 마시라.

존경하는 범위를 넘어 한 인물을 우상화하고, 그 인물의 숭고한 이념 아래 사람들을 줄 세우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당의 정치인분들은 부디 정치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 레닌을 이용했던 스탈린이 되지 않길 바란다. 민주당의 이름에 어울리는 민주적인 정당이 되어, 그 누구라도 평등한 위치에서 우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당이 되시라.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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